앞서 살펴본 집적회로(IC)의 발명 과정에서 잭 킬비와 함께 중요한 인물로 언급된 로버트 노이스. 그리고 최초의 트랜지스터를 발명했으나 독선적인 성격으로 원성을 샀던 윌리엄 쇼클리. 이 두 사람의 만남과 갈등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과수원 가득했던 샌프란시스코 남부에 전 세계 기술의 수도인 '실리콘밸리'를 탄생시키는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반도체 산업의 요람이자 창업 신화의 발상지인 페어차일드 반도체와 실리콘밸리가 어떻게 태동하게 되었는지 그 역동적인 역사를 파헤쳐봅니다.
1. 쇼클리 반도체와 '배신자 8인방'의 난동
노벨상 수상자인 윌리엄 쇼클리는 1956년 자신의 고향인 캘리포니아 북부 마운틴뷰에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Shockley Semiconductor Laboratory)'를 설립했습니다. 그는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젊은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을 끌어모았습니다.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훗날 인텔의 공동 창업자)도 그들 중 일부였습니다.
하지만 쇼클리의 기형적인 경영 방식과 편집증적인 성격이 다시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그는 직원들에게 거짓말탐지기 테스트를 강요하고, 연구 성과를 서로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직원들의 사생활을 간섭하며 회사를 고압적인 감옥처럼 운영했습니다.
참다못한 8명의 핵심 젊은 엔지니어들(로버트 노이스, 고든 무어 등)은 쇼클리를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쇼클리는 이들을 향해 "배신자들"이라며 치를 떨었지만, 이들의 독립은 세계 기술사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2. 페어차일드 반도체의 탄생과 혁신
쇼클리를 떠난 8인방은 뉴욕의 카메라 제조업체인 페어차일드 카메라 앤드 인스트루먼트의 자금 지원을 받아 1957년 '페어차일드 반도체(Fairchild Semiconductor)'를 설립합니다.
이 작은 회사는 단순한 벤처기업을 넘어 세계 반도체 산업의 사관학교이자 요람이 되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평면 공정(Planar Process)과 실리콘 IC 양산 기술이 바로 이 페어차일드 연구소에서 꽃을 피웠습니다.
세계 최초로 상업적으로 성공한 실리콘 집적회로를 대량 생산하며 막대한 부와 명성을 거머쥐었습니다.
하지만 성공의 과실을 나누는 과정에서 창업 멤버들과 본사 경영진 간의 갈등이 발생했고, 핵심 인재들이 차례대로 회사를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글로벌 테크 거인들이 탄생하게 된 '분열의 마법'이었습니다.
3. 실리콘밸리의 씨앗을 뿌리다: 페어차일드 키즈
페어차일드 반도체에서 갈라져 나온 인재들이 세운 회사를 이른바 '페어차일드 키즈(Fairchild Kids)'라고 부릅니다. 이들이 세운 기업들의 명단은 그야말로 현대 IT 역사의 뼈대를 이룹니다.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는 페어차일드를 나와 세계 최대의 반도체 제국인 '인텔(Intel)'을 창업했습니다.
또 다른 엔지니어들은 그래픽 카드의 거장 'AMD'와 벤처 캐피털의 전설인 '클라이너 퍼킨스' 등을 설립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남부의 캘리포니아 태양빛 아래, 과수원이었던 땅은 순식간에 전 세계 최고의 두뇌들과 벤처 자금이 몰려드는 거대한 실리콘 생태계로 변모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의 진정한 탄생 비화입니다.
| 실리콘밸리의 전설이 시작된 페어차일드 반도체. 출처: spur.org |
핵심 요약
쇼클리의 독재적 경영에 반발한 8명의 핵심 인재가 회사를 떠나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설립했습니다.
페어차일드는 실리콘 IC 대량 생산 기술을 완성하며 세계 반도체 산업의 중심지로 떠올랐습니다.
이 회사에서 파생되어 나간 인재들이 인텔, AMD 등 수많은 거대 IT 기업을 창업하며 실리콘밸리가 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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